하루는 의료보험조합장이 의회 의원과 감담회를 갖겠다고 통지가 왔다. 의회 소회의실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조합장이 의원에게 간담회 자료를 나누어주었다. 내용인즉 보건복지부에서 내려보낸 공문인데 ‘제주의보’에 대하여 지방의회가 의료보험에 관하여 여러 가지 지적을 하는데 대한 중앙정부 감독부처의 의견을 묻고 거기에 답변한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유권해석 통지서였다. 지방의회는 ‘의료보험에 대하여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료보험조합장은 이것을 가지고 중앙정부의 견해에 의하면 의회가 조합에 대하여 관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니 차후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즉각 반격했다. “지방자치시대의 도래는 그 지방의 일을 그 지방민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을 뜻하며 그 일차적 책임이 지역대표기관인 의회에 있다. 법이 어떻게 정해지든 중앙정부가 어떤 견해를 갖든 그와 관계없이 그 지역민이 고통스러워 하는 일에 의회가 있어야 하고, 고통을 해소하고 편안한 삶을 하도록 의회가 노력하여야 하며, 법의 모순된 장막이 있으면 그것을 걷어내려고 노력할 때 의회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의료보험료의 과다로 고통받는 제주시민을 위하여 의회는 반드시 바른 말을 하고 시정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의료보험조합이 우리가 거추장스럽다면 보건복지부로 사무실을 옮겨가고, 아니면 제주시민과 무관한 한라산 속에 자리잡고 의료보험료 고지서를 제주시민에게 발송하지말라. 그러면 제주시민의 삶과 무관한 의료보험조합에 대하여 간섭을 요청해도 의회는 거절하겠다” 이렇게 의료보험측과 논쟁이 벌어지는데 의원 중에서 발언권을 얻더니 “의장은 법에서 의료보험에 관여 못하도록 되어있다는데 왜 자꾸 걸고 넘어지느냐” 하며 나에게 대놓고 고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료보험조합장과 정면 대결하는 중에 아군 측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이다. 정말 나는 의회의장으로서 적법한 일만 해야 할 처지에 부당한 일을 하여 의회가 바른 길을 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의원이 의회에서의 발언이었다.
나는 순발력이 없으면 이제 의료보험료를 시정하고 시민 고통을 해소하는 일에서는 손을 떼어야 하고, 앞으로 의회가 부당한 일을 하다 좌절했다는 오명을 쓰게 되고, 그 장인 나는 더욱 개인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법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법의 정신이나 그 내용이 국민에게 이익되는 선법(善法)에 따르지, 일제식민지가 우리 민족을 통치하기 위하여 만든 식민지법을 그대로 옮긴 악법이나 시효가 지난 사문화된 법을 어느날 견강부회로 내밀어 국민을 못살게 하는 법에 따라가면 이 나라와 국민의 장래에 희망이 있겠는가. 식민지법을 가지고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듯, 한국정부기관이 이 국민을 통치하려 함은 그 법을 운영하는 자들이 우리 시민을 식민지시민으로 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될 과오를 범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문화법은 마치 조선시대 법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시대의 변천에 법도 변해야 한다. 국회는 이 일을 잘해야 국민이 편안하고 국가는 발전한다.
나는 발언한 의원을 향하여 “좋습니다. 당신의 지역구에는 의료보험료로 인하여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의료보험료가 만족할만큼 부과되니 아주 만족하다고 말하더라고 당신 지역구에 가서 말하겠습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다른 지역에 가서도 당신 지역구 주민의 의료보험에 대하여 만족하게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여 제주시민의 여론이 비등하는 것을 잠재워야 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조용히 앉았다. 두고두고 왜 그 의원이 그런 발언을 했나 생각해봤더니 조합장과 개인적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난 후, 조합장 보고 의료보험료 인하를 권유했다. “의료보험료는 해당시민의 의료비 충당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지 왜 과다책정해서 그 수익으로 조합회관을 짓겠다고 하느냐. 수익은 경제사업 즉 기업을 해서 사업비를 제하고 남는 돈이 수익이지 동의절차도 없는 시민을 상대로 법이다 하는 강제의 잣대를 대고 정도 이상의 돈을 거둔 것이 수익이 되는가? 수탈이지! 이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애국자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잘 살고 편하고 앞날에 불안을 덜어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애국이다. 정권 유지를 위하여 국민을 누르는 것은 현대적 의미로 비애국적이고 그렇게 때문에 나라를 배반하고 민족에 반역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조합장은 그래도 보험료 인하 검토에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