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진背水陣
-초인 현달환-
배수진,
내가 그미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어
들판에 바람 부는 날이었던가.
마지막 남은 옷을 다벗고
잠자리에 들 즈음
불어 닥친 폭우 속으로
허우적거릴 때
남아있던 힘은 스르르 식어갈 때
진이 빠진 몸부림에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인내의 지팡이를 하나 부여잡고
그 홍수의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친 때
마주친 그미라네.
등골이 오싹함은
어떤 기분일까
겁 없이 찾아온 그미
내가 어찌 그미를 저주할까
바람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아니 구름이라도 좋았으리라
내안에 숨죽여 바라보는 그미
두 손을 내밀며
그 타오르던 열정에
오로지 일념 하나로
햇빛의 집중과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그미의 보이지 않는 뜨거움.
그미는
나의 등어리에 얼굴 바싹 묻고
떠날 줄을 모른다
그미는 나의 안간힘
그미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
그미는 나의 마지막 동아줄
태양이 비추는 날
그미의 은빛 머리카락은
하늘거린다
영롱하게 피어난다
그미는 이제다시
내안에 있다
깊게 잠을 자고 있다.
병신년 한해도 다사다난하여 많은 이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난해의 오늘과 올해의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같은 날인데 매년 맞이하는 마지막의 하루는 다 다르다고. 지난한해의 오늘도 하늘을 보면서 바다를 보면서 산을 보면서 가족을 보면서 후회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올 한해의 오늘도 마찬가지로 후회하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그 사건 상황이 다르기 우리는 지난 한해의 오늘과 같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이 12월31일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매일 시간의 싸움을 분, 초 단위로 다투며 산 때도 있지만 그것을 매일 하다보면 너무 기계적인 삶이 되어 무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배수진을 칠 시기이다. 위기라고 한다면 위기일까. 12월 31일 이시간이 위기일 것이다. 누군가는 위기는 다시 위험과 기회로 나누어 기회일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 지금은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그 기회를 찾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 희망이 없다면 바로 위험에 빠질 것이다. 위험이라는 것은 곧 무너진다는 것이다, 삶에서 쓰러지고 결국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굳건한 열정의 외침이다. 즉 배수진을 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몰락할 것이다.
우리는 병신년 올 한해를 보내면서 서로가 기대감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의 발전을 보면서 나의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올 한해를 달려오지 않았는가.
12월 31일 마주하면서 다시 들메, 신발 끈을 동여매어 다시 뛰어가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너도 할 수 있고,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고 나도 할 수 있다.
시나브로 찾아오는 저녁 즈음엔 모든 시름 잠재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