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 25일은 연동민에게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몇년간 애쓴 보람으로 멋진 경로당 건물이 삼무공원 동남쪽 자락에 지어지고 준공기념식을 겸한 개관식을 가졌다. 자금 모으랴, 희사금 내랴, 한 덩어리가 되어 힘든 것을 참고 노력한 보람에 그간의 어려움과 고생은 씻은 듯 없어지고, 축제의 한마당을 열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잔치를 열었다. 도 노인회장을 비롯하여 기고나장 등 다수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고, 공로패, 감사장 등을 수여하는 등 개관식 행사도 멋있었다.
1층 대회의실은 제주시 전역에서 모여든 노인들로 북새통이 되었고, 북, 장고로 흥을 돋군 노인들은 즐거운 하루의 잔치마당을 벌였다. 이제 우리 사회의 노인들을 생각해 볼 때이다. 한 많은 세월, 가난한 생활, 핍박받은 시대, 전쟁의 폐허 위에 삶을 끈질기게 꾸려오면서 나라지키고 경제를 부흥시켜가며 자녀교육에 한평생을 바친 분들이 노인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 국민으로 선조의 제사를 모시던 놋그릇, 숟가락까지 수탈당하고, 제2차대전 때는 징용으로 군역으로 현역군인으로 강제 징발되어서 형언키 어려운 고초를 당하였고, 해방의 즐거움도 실감 못하고 4·3사건이 터져 밤에는 폭도편이고 낮에는 군경편이 되는 목숨 부지를 위해 사람이면 차마 견디기 어려운 난세를 이렇게라도 모면하다보니 6·25 전쟁이 발발하여 목숨을 바쳐 강토를 지킨 사람이 지금의 노인 아닌가?
이들을 위하여 경로당이라도 지어 모시는 징표로 삼는 것이 우리 젊은 사람이 마땅히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는데 최선을 경주하였다고 회고한다. 윗분들을 섬기는 것은 곧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남에게 대접을 하는 것은 나에게 대한 대접 받음을 예약해두는 것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남을 먼저 대접하여라는 옛 어른 말씀은 백번 지당하다. 선배를 위함은 후배에 대한 교훈이고 시범이다. 후배도 따라 우리가 나이 들 때 모시는 운동을 하는 동기를 마련한 것이며 우리도 그들에게 미안함이나 송구함 없이 존경받는 전통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경로당 앞마당에 세운 취지문은 내가 직접 지은 내용이다. 김치부 사장의 공적비문도 썼다. 일본, 도쿄, 오사카를 돌아보며 경로당을 몇 군데 둘러보고 국내 경로당을 둘러보았지만 우리가 지은 경로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건물도 그렇고 위치가 그만이다. 이제 이 경로당에서 한많은 인생을 살아온 노인의 여생을 편히 쉬는 좋은 장소가 되기를 손모아 빌어본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동방예의지국이라 해서 충효와 예절을 숭상하고 생활화해왔다. 앞으로도 이 미풍양속을 더욱 발전시켜 오랜 세월이 흘려도 퇴색되지 않게 후대들도 실천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