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만세!
-초인 현달환-
여자,
눈이 멀어 남자라는 색다른 존재를
알게 되어
혼례란 예식을 통하니
남자만 얻는 게 아니다
늘 익숙한 지어미와 다른
또 다른 어머니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
여자,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지어미는
세월에 묻히고
서서히 잊혀가면서
익숙한 어미보다는 더 많이
새로운 어머니와 익숙함을 위해
새로운 정을 쌓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여자,
죽을 만큼 아파올 때, 그제야
익숙함에 잊힌 지어미를 떠올리다
그 회한에 말라버린 눈물마저 짜내며
소리치며 울어도
거친 신음소리만 나올 뿐
108개의 주름진 얼굴만 비벼대며
그나마 어릴 적 그 숨결, 체온을 확인하는 것
여자,
생의 전반부의 어리광만 부리다
염색체가 다른
남자, 그와의 만남으로
후반부에야 인생의 깊이를 알고
흔들리는 정체성에
갈팡질팡 안절부절 하기도 하며
또 다른 어린 여자의 거울이라
익숙했던 그 어미처럼
또 다른 익숙한 어머니가 -숙명처럼- 되어주는 것
여자,
세월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대범함에
세상은
인간은
자연은
하늘은
여자에게 빚을 진 것
무한한 빚을 지고 있는 것
여자,
오늘이라는 작은 시간만큼은
하늘과 태양 그리고 바람보다
온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묻혀
반짝반짝
빛
나
리
라
여자, 만세!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라서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수는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것이고 실수라는 것 때문에 세상의 조화라는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 가령 하느님이 세상을 전부 남자로만 태어나게 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벌할까? 아니면 전부 여자로만 탄생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애처로울까? 지금은 확률적으로 5:5로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되어서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닐까?지구위의 반은 남자, 여자라는 조용필 노래 ‘여와남’ 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우리가 사는 이 땅, 지구위에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이다. 그 중에 여자라는 존재는 참 귀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들을 원하는 어느 가정에 딸 부잣집은 아빠가 기운 빠져서 기가 죽는 일이 종종 목격했다. 아들을 많이 낳은 어느 마나님은 목에 힘을 주고 자랑스럽게 다니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떤 곳인가? 환경이 바뀌어 이제는 딸 부잣집 아빠들이 목에 힘을 주고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존재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에 농사나 사냥을 하던 시대에는 단연 아들이 최고였다. 그래서 아들이 곧 집안의 얼굴이고 늘 든든함을 느끼고 모든 것을 아들에게 기대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지나 이제 정보화시대, 골드시대란 말이 나온 지금 남자의 역할은 줄어들고 섬세함을 내세운 여자라는 존재감이 부각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대엔 여성이라는 존재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 그것은 모성이라는 어릴 적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과도 같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세상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감은 치유와 안식이라는 둥지를 준다. 그로인해 모든 화와 병들이 치유되고 여성이라는 존재로 인해 대화의 대상으로 인해 사회의 병폐가 줄어드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아들과 딸이 두 명씩이나 있다. 혹자는 대단한 애국자라고 한다.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이 시기에 3명씩이나 되니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보다는 딸들과 더 친하고 대화를 자주하는 것 같다. 세상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와 서로 끌리게 되고 안심을 하게 되고 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만을 위한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조화가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여자라는 존재를 뒤에서 돌이켜보니 이 시대에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여자들에게 ‘행복’ 이라는 선물을 준비해야 될 것이다. 그 선물은 바로 ‘사랑’이라는 최고의 선물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떠나 전 인류를 이어지게 하는 이 땅의 모든 女자, 女성, 女인, 女사, 女군,
女친, 女제, 女신, 女식들이여, 만세!